토요일엔 대학원 논문 준비, 일요일엔 교회 일에 매달려
한인교회를 창립한 이래 교회 일로 시간을 많이 소비했지만, 우리끼리 우리말로 예배 보는 것과 일요일에 옹기종기 모여 같이 식사하는 일이 즐거웠다. 게다가 일요일 예배가 끝나면 다른 교인의 초대를 받아 함께 저녁 식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일 등은 이민생활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 영양제와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대학원 공부는 그 어떤 일보다도 가장 중요한 내 목표였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허락한 시간과 토요일 꼬박 하루는 대학원 논문실험에 전념하고, 일요일에는 종일 교회 일에 매달렸다.
아내는 5일 동안 직장에서 일하고 토요일은 밀린 집안일과 교회예배 준비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차례대로 돌아오는 교인들 식사준비가 겹치는 토요일이면 더욱 바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한인교회에 참석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현진이도 매주 교회 주일학교에서 같은 또래 아이들을 만날 때는 무척 활발하게 놀았다.
논문실험은 예상대로 잘 진행되어 조금만 더하면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 출근하면 론 베이리 실장이 지시하는 일을 먼저 처리하고 보고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한테는 주지 않는 하루 시간을 검은 머리 한국인에게 주며 유급 처리하여 대학원에 보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어디까지나 과거 회사 사장들이 합의하여 결정된 일이므로, 내가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그 약속이 지켜지리라 백 퍼센트 믿고 그의 태도에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나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검은 머리 한국인을 무시하는 그의 태도에 기분 좋을 리가 있겠는가. 약소국 이민자들의 설움이란 게 그런 것일까? 때로는 확! 격한 감정이 치솟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참고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낮추는 길이 살 길이었다. 론 베이리 실장의 감정을 건드려봤자 내게 불리하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내 인격을 밟고 무시하는 것이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화근이 될 만큼 몹시 괴로울 때가 많았다.
어린이집에 현진이를 맡기고 잘 적응할 지 항상 걱정
현진이를 보살피던 아주머니가 취업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는 할 수 없이 동네 어린이집에 맡기기로 했다. 거기는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보육선생님들이 있긴 해도, 놀이터에서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아이들 간에 다툼이 생길 수도 있는 터라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침, 저녁에 어린이집 원장을 만날 때 현진이의 적응상태를 물어보면 아주 잘하고 있다고 했다. 우는 아이를 현진이가 나서서 달래주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싸울 때 얼른 말리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기특하기도 하고 사실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현진이를 보살피는 문제는 우리 마음속에 늘 과제였다.
하루는 원장이 아주 급한 목소리로 “아이가 다 시들어가고 있다. 열도 많이 나고,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 빨리 와서 데리고 가라.”고 전화를 했다.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바로 갈 테니 잘 좀 보살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정신이 그저 멍했다. 아내한테 연락했다.
현진이가 아프다는 어린이집의 연락을 받고
나는 조퇴 허락을 받아 차를 몰고 아내와 급히 어린이집으로 달렸다. 그런데 퇴근 시간이긴 했지만, 아무리 달리고 또 달려도 웬일인지 어린이집에 도착하질 않는 것이었다. 늘 다니던 길인데도 자꾸 다른 길이 나오고, 방향을 바꾸어도 목적지인 어린이집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GPS 시스템이라도 있어서 찍어보겠지만, 지도를 보고 또 봐도 마찬가지였다. 원장의 다급한 말을 듣고 그만 내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었다.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위치를 보니 아! 같은 코스를 계속 돌고 있는 게 아닌가?
아내는 정신 차려 운전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조심 어린이집을 찾았고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가량 지연되었다. 원장이 현진이를 보살피고 있었는데 아이 얼굴이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현진이가 우리를 보더니 큰 소리로 울어대며 바지에 설사를 했다.
엄마, 아빠가 없을 때는 설사를 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열이 오르면서 설사에다, 기절할 만큼 울어댔다. 우리는 급히 서둘러 가까운 G.P(일반 가정 의사)한테 데려갔다. 가끔 현진이를 검진하는 의사였다. 온몸에 냄새가 나고, 열도 있고, 오한에다… 참으로 비참한 느낌이 들었다. 순번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데도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제도가 원망스러웠다. 결국, 의사 앞에 현진이를 내밀었다. 설사한 팬티를 버렸지만 온몸에서 냄새가 났다.
어린이집의 무성의한 육아 관리에 분통
의사가 진단하더니, 식중독으로 복통을 일으켰고 그에 수반되는 열이라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며칠 동안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고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안정시키라고 당부했다.
식중독? 무얼 먹었을까? 혹시 어린이집에서 뭘 잘못 먹였을까? 어린이집이 원인이라면 왜 하필 현진이만? 철저히 위생검사를 하는 어린이집이기에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먹고 나서 현진이는 점점 안정을 찾았다. 엄마 품에서 오랫동안 자고 나더니 움직임이 달라졌다.
유효기간이 며칠 지난 우유를 마신 사실을 알아냈다. 그 우유가 복통을 일으켰는데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으니 아이의 얼굴이 노랗게 변할 수밖에! 우유로 인한 복통은 마시고 몇 시간 후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후 3시경 복통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나한테 전화를 건 것이다. 그 정도로 아프면 응급실로 데려갔어야 옳지 않은가? 분통이 터졌지만, 며칠 후에 또 아이를 맡겨야 하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하루씩 병가 내어 보살폈더니 다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그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가라앉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현진이는 어린이집으로, 아내는 직장으로, 나는 회사로, 토요일에는 아침 일찍 대학원 실험실로, 일요일이면 교회로,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