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 문제_2 (104회)
  제15장 공직생활3

(1) 그들의 집에서는 공산주의 서적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온서적이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

(2) WCC 본부에서 선교자금으로 쓰라고 보낸 돈을 KNCC에서 반정부 운동자의 변론비용으로 썼기 때문에 횡령죄가 된다는 것이다. 작년에 김관석 목사를 이런 죄목으로 1년 징역에 처한 일이 있었는데 WCC본부에서 서독의 국회의원이란 사람을 나에게 보내 항의한 일이 있었다. 여기에서 합의된 것은 선교사업 등에 쓰라는 명목으로 돈을 보내면 비록 그 돈을 선교목적 이외의 용도로 쓴다고 할지라도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비록 이 돈을 정치목적으로 유용할지라도 이제는 횡령죄로 처벌할 수는 없게 되었다.

(3) 박형규 목사가 작성한 강의안 노트의 표지에 ‘있는 그대로의 마르크시즘을 있는 그대로 비판하자’라는 구호가 영어로 씌어져 있는데 이것이 반공법에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아무리 보아도 반공법에 걸리지 않는다.

(4) 박형규 목사가 한국 신학대학의 교지에 쓴 글이 반공법에 걸린다는 것이다.

내용인 즉 “동구 공산국가 안에서 포교가 가능한 것은 그곳의 현지정권을 승인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에서 포교가 불가능한 것은 김일성 정권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 땅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것은 김일성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다.” 이렇게 쓰고는 나중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김일성 도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로서 끝을 맺고 있다.

이 마지막 구절만 빼고 보면 박 목사의 글이 반공법에 걸린다고 경찰이 판단한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박 목사는 조심스럽게 이 마지막 귀절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젊은 검사가 이 글을 가지고 법정에서 해방신학의 투사인 박 목사와 싸워야 하는데 그 싸움에서 이기리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더구나 방청석에는 같은 종파의 교인들과 전 세계 매스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박 목사 같은 베테랑과 해방신학에 관한 논쟁을 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 반정부운동으로 구속되어 재판받는 박형규 목사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런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전남의 어느 경찰서장이 유권자들 앞에 나아가 조목조목 내 칭찬을 하고는 나는 이렇게 박 대통령을 칭찬하고 싶지만 그러나 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그렇게는 말하지 않겠다, 라고 말하고는 퇴장하였습니다. 당시의 야당은 이것을 실질적인 선거운동이라고 인정하여 그 서장을 처벌하라고 떠들어 댔지만 이 마지막 말을 참작하여 나는 그를 다만 벽지로 좌천시키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습니다. 박 목사의 이 글은 서장의 마지막 발언과 꼭 같은 양상이구만. 그러면 검찰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요?”

나는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검찰이 취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 뿐입니다. 죄가 있으면 기소하고 없으면 불기소하며 죄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재판에 까지 회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면 기소유예를 합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대통령은 그러면 기소유예가 좋을 것 같다고 하면서 서류 하나를 보여주며 “나는 그 사람이 검찰총장까지 지냈으므로 법률을 잘 아는 줄 알고서 자기 판단대로 해 보라고 맡겼던 것인데 큰일 날 뻔했구만.”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서류의 표지를 잠시 보니 NCC 불법화에 관한 것인데 거기에는 내무장관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글과 함께 대통령의 싸인도 친서로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눈앞이 아찔함을 느꼈다. 이 처럼 중대한 사건을 부하 장관한테 간단히 맡겨버렸으니 혹시 대통령의 총명이 흐려진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나는 곧 정치근 검사를 시켜 치안본부에 가서 구속된 7명의 인신을 인수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미 실패한 것을 자인한 김 내무는 목사 3인만 송치하고 나머지 신도 4명은 경찰선에서 석방하였다. 박 목사 등 3명을 인수받은 정치근 검사는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취지의 각서를 받고 7월 6일에 그들을 기소유예의 형식으로 석방하였다.

7월 9일 신직수 중정부장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이번의 검찰처사에 대하여 미ㆍ일의 여론이 대단히 좋습니다. 황 장관은 이번에 우리 정부와 이 정권에 대하여 참으로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7월 20일 바이킹I 화성에 연착
8월 1일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레슬링 금메달 획득.
8월 18일 판문점에서 북괴병이 UN군 장교 2명을 도끼로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8.18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라는 것인데 전 세계를 깜작 놀라게 하였다.

9월 9일 중국 주석 모택동 사망(82세)
9월 14일 유기춘 문교가 장관실에서 졸도. 그날로 뇌수술을 하였으나 끝내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5년 후 세상을 떠났다.
9월 18일 법무부 직원으로부터 장관 취임 2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품을 받았다. 이날부터 나의 결재 싸인을 바꿨다.

 
  NCC 문제_1 (103회)
  문교부장관으로 전임 (105회)
  |11||12||13||14||15||16||17||18||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