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덕 형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석우 황산덕은 법학자, 불교학자로서 언론인으로, 그리고 법무장관과 문교부장관 등을 역임, 다채로운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서울대 법대, 고려대 등에서의 연구, 강의를 통한 그의 법철학 이론은 지금까지 서양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하던 존재와 당위의 2원론을 극복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또 그는 언론계의 논객으로 부정부패와 권리의 남용을 질타하는 데 앞장 서 정의구현에 힘쓰다가 동아일보 필화사건으로 투옥되는가 하면 정비석의 인기소설 ‘자유부인’을 문제삼아 논쟁을 벌임으로써 우리나라 논쟁사의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아호 석우(石隅)는 중년시절 그가 섬기던 김범부가 지어준 것으로 “우리나라 강토를 따지고 보면 커다란 돌이 부서져서 된 땅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큰돌의 한 구석을 맡으라”는 그런 뜻을 담고 있다. 석우는 3살 때 부친이 3·1운동에 가담한 탓으로 1년 6월의 형기를 받아 평양감옥에 수감되자 모친을 따라 평양으로 와서 조부모 밑에서 자란다.
중학 시절 석우는 삼국지연의를 탐독했으며 자습으로 미분학, 적분학, 해석기하학, 미분방정식을 공부했는가 하면 타원함수론, 군론(群論), 위상(位相)기하학, 상대성 원리 등도 독학으로 익혔다. 18세 때 석우는 여순공과대학에 응시, 합격했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듬해 경성제대 예과의 문과에 합격하게 된다.
1943년 석우는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 필기시험에 동시 합격하며, 이듬해 판사가 되려고 원서를 냈으나 3·1운동에 가담한 사상범의 아들이라고 하여 허용되지 않는다. 1948년 고려대 법정대 부교수로 취임. 국제사법 및 법철학을 담당했던 석우는 1952년에 서울대 법대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954년 대학신문(서울대)에 유명한 ‘자유부인 작가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 그때부터 작가 정비석과의 대논쟁을 벌이게 된다. 그 무렵의 ‘지상(紙上) 링’ 위에서는 정비석과 황산덕이 맞붙고 변호사 홍순엽, 문학평론가 백철이 태그매치 식으로 거들었다.
석우는 대학신문에 장문의 글을 실었다. “대학교수는 권력도 돈도 없는 불행한족속들이다. 귀하는 사실도 아닌 허구를 써 가면서 무의미하게 대학교수를 망신주고 있다. 우리의 비난 쯤은 문제시 하지 않겠다는 배짱인가” 석우는 자유부인을 훑어보다가 “곤색 스커트 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은미의 하얀 종아리가 눈에 띄는 바람에 별안간 가슴이 설래었다. 젖빛으로 뽀얗고도 포동포동 살이 찐 무척 아름다운 종아리다.”라는 대목에서 특히 분개했다고 술회했다.
대학에서 당시 하이데커, 야스퍼스, 막스베버 등을 주로 연구하던 석우는 1957년 8월 한국법철학회를 창립, 초대회장에 취임하며 이해 12월 학위청구논문 ‘최신 자연과학의 발달이 법철학에 미친 영향’이 서울대 대학원위원회를 통과한다. 1960년 9월 30일 수년간 미뤄오던 법학박사 학위가 서울대 대학원에서 수여되며, 1962년 5월 1일에는 동아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취임, 7월 28일자에 쓴 사설로 인한 필화사건으로 구속, 군사재판을 받다가 4개월 후인 12월 7일 석방된다.
그 무렵 군사정부에서는 민정이양 후의 헌법에 관하여 1962년 8월 12일자 박정희 장군의 성명을 통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것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석우는 1962년 7월 17일 제헌절을 맞아 제정형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설을 썼다.
헌법을 새로 제정하면 국가의 동일성이 파괴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그 후 박정희 장군은 이른바 ‘차중(車中)담화’에서 헌법은 ‘제정’ 형식으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종전의 태도를 바꿨다.
그러나 제정형식을 취할 경우 제2공화국 헌법에 의한 국회를 통해서 제정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투표 방식에 의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었으며, 그 당시 헌법심의위원들은 대체로 국민투표 방식을 취할 것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석우는 7월 18일 자 ‘국민투표는 만능이 아니다’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제2공화국 헌법에 의한 국회를 통해 헌법을 제정할 것을 주장했다. 그때로서는 사뭇 과감한 주장이었다.
사설이 나가자 동료인 이동욱 당시 논설위원도 소총(小銃) 사설이 아니라 대포사설이었다 면서 격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러나 그는 사설로 인해 7월 30일 밤에 광교에 있던 중앙정보부 수사국 분실에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된다. 허위사실유포죄에 해당하느냐의 여부가 신문의 초점이었는데 “…나중에는 김종필 부장이 직접 나섰다. 김 부장은 그 누구보다도 예리했으나 죄가 될 만한 단서는 끝내 집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태흥 판사가 발부한 영장에 의해 정식으로 구속되었고, 사건이 검찰로 넘어감에 따라 마포교도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옮겨졌다.”고 석우는 그 무렵을 회고했다.
1965년 들어 한·일 협정 비준 무효화를 외치는 학원사태가 위수령 발동으로까지 확대되자 그는 학생데모를 감쌌다는 이유로 이른바 ‘정치교수’로 몰려 서울대 교수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래서 그는 1966년에는 변호사 개업을 하는 한편 성균관대 법정대학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석우는 1974년 성대총장에 취임하지만 취임 한달여만에 제24대 법무부장관에 임명되고 다시 1976년에는 문교부장관으로 옮겨 앉게 된다.
만년에 그는 단국대 대학원대우교수로 계속 강단에 섰다가 1989년 10월 19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72세로 별세했다. 생전의 친우 이항녕 교수는 석우가 “친구를 좋아하고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리 두터웠던 것은 그가 타고난 풍류인이었던데서 온 것 같다”면서 “자연을 즐겨서 등산을 좋아했고 가슴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결한 정서가 그로 하여금 글 쓰게 하여 많은 주옥같은 저술도 남기게 했다”고 기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