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황준식, 1861~1939)께서는 풍류를 좋아하고 다정다감한 분이었지만 자식들에 대해서는 참으로 엄격하시었다. 그래서 선친께서는 반대로 자식들을 방임해서 키우셨는데, 두분의 자식 교육 방침에는 일장 일단이 있다고 생각된다.
형제들 중에서 오직 나만이 할아버지의 교육을 호되게 받았다. 내 밑의 동생들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태어났기 때문에 거꾸로 아버님의 방임 교육 밑에서 자랐다. 나는 할아버지의 교육 방침이 그 당시에는 매우 고통스러웠고 그리고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터는 할아버지에 대하여 말 할 수 없는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특히 식사 때의 예의 범절과 일상 거동에 대하여 매우 까다로우셨다. 밥을 먹으면서 음식 씹는 소리를 내거나 말을 하는 것, 국물을 마실 때 소리를 내는 것, 밥 투정을 하는 것, 밥그릇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서 먹는 것, 밥알을 흘리는 것, 그리고 밥을 다 먹지 않고 그릇에 남기는 것, 등등에 대해서는 언제나 야단을 치셨다. 그리고 웃어른 앞에서 다리를 꼰채 의자에 앉든가, 의자에 앉아서 무릎을 떨면 호된 꾸지람을 하셨다. 이렇게 엄하게 꾸중만 하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에는 그것이 매우 고통 스럽게 느껴졌다.
하루는 밥을 먹으면서 내가 말을 많이 하자, 밥 먹을때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시었다. 내가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식사 때에 말을 많이 하는데요 라고 반문하자 할아버지께서는, 서양 사람들이 지금은 물질 문명의 발달로 큰 소리 치고 있지만, 상놈들이니까 그들의 흉내를 낼 필요가 없다라고 잘라 말하셨다.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시었다. 특히 젊으셨을 때에는 아주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20대의 젊은 시절에는 정초에 친구분들과의 술자리에서 독한 소주 365잔과 돼지 뒷다리 하나를 거뜬히 해치웠다는 말씀을 자주 들려 주시었다. 또 방안에 큰 거울을 걸어 놓고 그 앞에서 춤을 추면서 무용 연습을 하였다는 말씀도 하시었다.
그러나 말년에는 술을 조심하여 저녁 식사때에 반주로 소주 한 공기 정도를 마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신의 생신때에는 손수 나가 장을 보아 오셨는데, 특히 갈비 한 짝을 들여 다가 손수 양념하기를 즐기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유학을 숭상하시었고, 기독교에 대해서는 항상 비판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외조부이신 배정일 목사를 대하실 때에는 항상 언중유골인 말씀만 하셨다.
ʻ길선우 목사는(33인 중의 한 사람) 표리가 부동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항상 조상 제례를 지내지 말라고 설교하고 다녔지만, 순종 임금의 국상 때에는 상장(喪章)을 몸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자기의 조상에 대한 제사는 지내지 않으면서 나랏님의 장례 때에는 상장을 붙였으니, 무슨 놈의 기독교가 이렇습니까?ʼ
대학 2학년 때인 1939년 5월 31일 나는 평양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조부위독 급래 부 = 할아버지 위독하시니 급히 와라 아버지가> 나는 그 길로 기차를 타고 6월1일 아침에 평양에 도착하였다. 할아버지는 의식은 분명하였으나 말씀은 못 하시고 나를 반기면서 그저 손짓만 하시었다. 옆에 계시던 고모님이 할아버지가 말이 나오지 않는가 보다라고 나를 위로해 주셨다. 옆에는 내가 지난 봄에 사다드린 보드카 술병이 반 정도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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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부 장례사진(1939년) / 원 안이 석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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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상태가 심상치 않으므로, 자리에 누으신 채로 안방으로 옮기셨다. 임신 중인 어머님은 우리 집으로 가시도록 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모여 앉아 때를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가래가 끓기 시작하자, 큰 아버님은 할아버지의 머리에, 아버님은 바른 손, 작은 아버님은 왼손, 나는 가슴에 손을 대었고 그 밖의 동생들은 두 다리를 붙잡고 할아버지를 지켜보았다. 그런 가운데 할아버지는 운명하시었다.
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아 선영에는 모시지 못하고, 평양의 북쪽에 있는 아미산 공동 묘지에 모셨다. 79세, 할아버지는 치아가 참으로 좋으셨는데 10년 전에는 어금니하나가 뽑힌 것을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가지고 가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