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과 1981년 (116회)
  제17장 인생의 정리

단국 대학으로 가다

1980년(64세) 2월26일 <여래장>을 탈고하였다. 이 원고는 나중에 동국 대학교 역경원에서 현대불교신서의 하나로 6월15일자로 5,000부 인쇄되었다. 단국대학교의 장충식 총장이 집으로 찾아와 골프 비용이나 만들어 드리겠으니 대학원 강의를 1시간만 맡아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리하여 3월1일자로 대학원 교수실 소속 대우교수가 되었는데 봉급이 약간 과다하였으므로 학부강의도 1강좌 맡기로 하였다.

4월 14일 처남 황세봉이 암으로 별세.
6월 3일 남채 필라델피아에서 생남. 재익으로 명명. 미국 이름은 Jake Yoo.
7월 25일 영준 대우실업을 퇴사하고 대윤상사 설립.

8월 10일 김웅 국방과학연구소를 사임하고 8월 20일 연세대 문리학 교수로 발령 받았다. 박대통령에 의해 은밀히 추진되어 왔던 핵무기 개발은 중단되었다.

11월 14일 전 보안사령부 정보부장 권정달 씨가 찾아와 앞으로 만들어질 정당에 입당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거절하였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으니 정당원이 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11월 24일 구태회 씨의 후임으로 대한불교 진흥원의 이사장이 되었다. 구 씨는 정치활동 금지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공직을 떠나 가업인 럭키금성의 일에만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11월 26일 미국 마이아미에서 개최되는 ICUS 제9차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회의가 끝난 후에 케네디 우주센터로 가서 우주선 발사장 등을 구경하고 필라델피아로 가서 남채 가족을 만나고 팔로알토에 가서 옥채 가족을 보고 12월 9일에 귀국하였다.
 
1980년에 접어들면서 국내의 정세는 혼란을 극하였다. 5월 13일에는 8만 명의 학생들이 3일 동안 시내를 누비면서 격렬한 데모를 벌였으나 시민들의 호응은 없었다.

5월 17일에는 김대중 씨 등이 체포되었고 드디어 5월 18일에는 소위 광주사태가 발생하였다. 광주의 젊은이들이 광주 시내에서 과격한 데모를 벌이자 박준병 사단이 엄하게 다루었고 데모 군중이 광주 시내를 점령하여 무법천지가 되자 군인들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진압되었다. 이 광주사태는 나중에 두고두고 정치 문제가 되었다.
 
▲ 이른바 서울역 회군으로 유명한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있었던 대학생들의 시위 광경 (동아일보 1980. 5.15.) / 이 시위 후 신군부는 전격적으로 계엄령의 전국확대와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 검거와 더불어 김대중, 김종필 씨를 연행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5월 24일 김재규 등에 대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5월 31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것이 발족하였다. 이것은 전두환 씨가 정권을 잡기 위한 기구였다.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하였고 9월 1일에 전두환씨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10월 27일에는 제 5공화국 헌법이 공포되었다.

이와 같이 혼란과 폭력 속에서 국가의 운명은 위험선에서 배회하게 되었고 고도성장을 계속하던 국내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2월 29일에 김대중 씨와 수많은 제적학생들을 복권, 복학 시켰는데 이것이 불행의 발단이 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법무부와 문교부의 시책은 참으로 커다란 불행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김대중 씨의 대중 선동적 활동은 복학생들은 대학생들을 거리로 끌어냈으며 그것은 광주사태에 이르러 그 절정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군인들로 하여금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구실을 주었다. 이리하여 최 정부는 물러가고 전두환 정부가 들어섰다.

그런데 젊은 대령들은 돈을 좋아하기 시작하였다. 깊은 생각 없이 국정 전반에 걸쳐 무차별 칼질을 하면서 다른 한편 그들은 공공연하게 돈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완전한 불신시대가 도래하였다. 평양에서는 김일성이가 그의 아들 김정일을 자기의 후계자로 정식 지명하여 남북은 다 함께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3월 18일 에리히 프롬사망 (79세)
4월 16일 사르트르 사망 (1905~1980)
5월 4일 유고대통령 티토 사망.
11월 4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레이건당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다

1981년(65세)은 침체와 우울의 한 해였다.

2월 24일 가족들의 실수로 아버님 얼굴에 가벼운 화상을 입으셨다.
2월 26일 윤선이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편도선 제거수술을 받았다.

5월 15일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영이 남채, 재익과 함께 귀국하였다.
5월 21일 옥채가 미국에서 생남하였다. 우진이라 명명. 미국 이름은 Edmond Lee.

8월 26일 옥채가족 일시 귀국.
9월 2일 영의 부친 유경식 씨 별세.
12월 25일 경수와 인록이 보스턴으로 이사 갔다.

1월 13일 월탄 박종화 별세 (1901~1981).
9월 16일 백성욱 박사 별세(1897~1981).
10월 6일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 피격사망.

 
  1978년과 1979년 (115회)
  1982년에서 1984년까지 (117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