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 학생들은 총장실을 비롯한 전 보직자들의 집무실과 학과장실까지 점거하고 밤이면 더 요란스럽게 학내소요가 계속되었다. 총장과 부총장을 비롯한 교무위원들은 인천전문대학의 빈 사무실을 빌려 학사업무를 재개했다.
그러한 학내 데모와 농성사태 중에 일부 학생들이 사무실에 침입하여 서류를 탈취한 후 직원 인사사항을 공개하여 상당한 문제가 야기되었다. 서무과장은 일부 서류를 다른 곳에 이동시키면서 직원 승진을 위한 고가표가 만약 직원들이나 학생들에게 공개되면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일 년 보관용 문서는 시효가 거의 다 되어 가니까 차라리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고 사태를 예단했다.
그리하여 서무계장과 서무과장이 품의(稟議)하여, 사무국장, 부총장을 경유하며 총장도 사인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건은 규정상 사무국장의 전결사항이어서 부총장이나 총장이 결재할 필요가 없는 서류였다. 그러는 와중에 문교부 감사가 온다고 하자 일부 학생들은 감사를 겨냥하여 의도적인 과격시위를 하였으나 수업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다.
학내의 데모와 농성이 한 달 가까이 되고, 수업의 진행이 어렵게 되자 교육부에서는 5월 하순경 재단에 공문을 보내어 설립자가 6월 10일까지 78억 원을 학교에 반납하면 현 재단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고, 반납하지 않을 경우에는 관선이사를 파견하겠다고 공표하여 인천대학 사태는 정치성을 띤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78억 원을 내어놓아도 관선이사가 파견되어 올 것을 판단한 설립자가 6월 10일까지 내어놓지 않자 문교부는 6월 13일자로 관선이사를 파견하고 18일경 임시이사회에서 학내사태에 대한 총장과 각 부처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이사가 “관선이사가 왔으니까 총장도 거취를 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교수들에 의해서 선출된 총장이기 때문에 사태를 정리해놓고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답변했다.
화장실에서 만난 문교부 직원이 “말씀 잘 하셨으며 문교부의 의견도 총장님의 의견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농성과 데모는 쉽게 풀어지지 않고 기물파손과 직원들을 폭행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학생들의 뒤에는 학생들을 선동하는 일부교수들과 반정부 재야세력들이 지원하고 있었다.
7월 15일경 관선 이사장이 만나자는 전갈이 와서 이사장실로 갔더니, 상임감사를 비롯하여 서너 명의 이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사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교환한 후에 이사장은 21일까지 사표를 제출해달라는 것과 사표를 내면 평교수로 발령하겠다는 의사를 나에게 전달했다.
학내사정이 어려우면 외국에 일 년 정도 갔다 올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하면서 만약 사표를 내지 않으면 징계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와서 보직교수 몇 분에게 이사장과 면담한 사실을 말했더니, 보직교수들은 “총장님이 사표를 내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합니까. 힘을 합쳐 사태를 해결해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사표는 절대로 내지 말아주십시오.” 하고 사정하는 투로 나에게 부탁을 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관선이사회는 이미 후임 총장을 내정해놓았다는 풍문이 있으므로, 21일까지 사표를 내지 않으면 아무런 하자가 없더라도 틀림없이 해임 아니면, 파면의 징계처분을 할 것이라고 나는 단정하고 있었다.
먼저 가족이 염려되었다. 파면이 되었을 때,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들과 이화여대에 재학하고 있는 두 딸의 교육비와 가족들이 생계가 염려와 두려움으로 엄습해왔다. 위기를 당했을 때 지도자나 경영자의 선택이 얼마나 고뇌해야 하는가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나와 가족을 위한 편한 선택은 사표를 내고 평교수로 다시 들어가서 1~2년 정도 외국에 갔다 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나를 지지하고 후원해준 교수들을 버려두고 자신을 위하여 사표를 내는 것도 사나이로서 할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압박했다.
5일 동안 번민을 하다가 파면을 당하더라도 사표는 내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7월 20일 저녁, 설립자가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이미 보직자들에게 듣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지만 백 장군은 “장 총장, 관선이사들이 사표를 내라고 한다면서?”라고 묻기에 나는 “그렇습니다.”고 대답했다.
“장 총장, 힘들 줄은 알지만 사표를 내지 말고 자리를 지켜줘요. 만약 징계를 당하게 되면 변호사 비용과 생활비를 다 대어 줄테니까 염려하지 말고 학교만 지켜주세요.”라고 해서 아내를 바꿔주니 나에게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셨다. 그리고 설립자의 부인도 전화를 바꾸어 아내에게 끝까지 돕겠다는 약속을 했다.
내가 사표를 내지 않자 관선재단은 7월 28일 전혀 근거가 없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총장 직위해제를 통보했다. 나는 즉시 문교부의 교원징계심의위원회에 직위해제 정지처분의 소장을 내고, 이때부터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관선이사가 지명한 징계위원회에서 나에게 붙인 징계항목은 학생 지도비를 방만하게 지출했다는 것, 학생들의 데모와 농성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것, 서무과장의 문서손괴를 인정해주었다는 것, 판공비 지출이 많았다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문서 손괴에 대해서는 서무과장, 사무국장, 부총장, 총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아마도 징계에 대한 재판을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발을 한 것으로 보였으며, 다분히 위협적인 목적도 있는 것 같았다.
나와 서무과장이 함께 소환당하고, 부총장은 사무국장과 같은 날 소환 당했다. 관선이사 측은 검찰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들려왔다. 사실대로 사무국장의 전결임을 진술했고, 담당인 K검사도 그것을 인정하면서 결재할 때 규정을 몰랐느냐고 묻기에 나는 그 규정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검사는 다시 서무과장을 불러서 사무국장 전결인에 왜 총장이 결재를 받았느냐고 심한 질책을 했다.
이 고발사건이 무혐의 처리가 되자, 관선이사 측은 다시 고검에 항고를 했으나 기각이 되었다. 나는 나를 고발한 사람들을 무고죄로 고소할까 하다가 총장이 그런 일을 한다면 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직위해제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관선이사의 징계위원회는 9월 7일 나를 파면으로 처리했다. 파면이 되면 연금혜택도 없어지고 5년 이상 다른 곳에 취직도 못하는데, 이와 같은 부도덕한 일을 스스럼없이 처리하는 사람들이 교육기관의 지도급 인사로 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세상이 이처럼 삭막하고 잔인한 곳인가 하는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너무 실망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잘 되어 간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