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방문 시비
사조직이 완료되고 그 세가 확대되기 시작하니 공조직도 동요하기 시작하여 나는 자연스럽게 공조직의 여러 사람들과 비밀로 유대를 갖게 되었다.
1967년 초의 전당대회에 수십 명이 서울로 올라와서 합숙을 하고 있었는데, 숙소에 찾아가서 환담을 하다가 그 중의 어떤 분이 서울까지 왔으니 전방에 있는 국군부대에 가서 위문이라도 하고 갔으면 하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나보고 주선하여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시간 여유도 없이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김포의 해병여단장이던 이병문 대령 생각이 나서 연락하였더니 쾌히 승낙하게 되어서 친구덕을 단단히 보게 되었다. 해병여단에서는 교통편을 포함해서 점심 등 모든 편의를 제공하여 주어서 위문갔던 사람들이 오히려 대접을 받고 돌아왔으니 지구당 간부들은 참으로 기뻐하였다.
그런데 그날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현역의 김중한 의원 측에서는 참가 희망자가 없어서 실패하고 말았는데, 며칠 후에 해병대 사령관에게 일종의 항의를 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나는 이병문 여단장에게 폐가 될까 심히 염려해서 강기천 사령관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였다.
사실 영덕은 포항에 가까워서 해병대 출신이 많았으며, 시골사람들에게 해병대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것은 나쁠 것이 없는데, 단지 그 행사를 내가 주선했고 나의 세력 확장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공식항의를 한다는 것은 주민들의 마음 속에 역효과를 일으키는데 충분하였다. 이병문 사령관과의 교우는 그 후도 계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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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문 해병대사령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마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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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출마 채비
중학교, 대학교의 급장, 총대의 선거에서 시작하여 4번의 국회의원 선거, 3번의 의협회장 선거, 세계 의사회장과 의사선거까지 합치면 내 일생은 선거로 이어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3번의 대통령 선거에도 참여했으니, 선거를 많이 치르게 되는 것도 하나의 운명이라 할 수 있다.
1960년 4.19를 치르면서 각종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내 마음 속에 깊이 쌓이기 시작했다. 태평로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가노라면 그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순수한 애국자같이 보이지 않았으며, 고귀한 학생들의 피와 뜻을 승화시키지 못하고 오직 당파싸움이나 사리사욕에 몰두하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니 정치하시는 분들에게는 많은 고충, 어쩔 수 없는 절망감도 있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지만, 그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나로서는 내가 들어가면 좀 다른 정치를 해서 최소한 성실하고 양심적인 나라 일꾼이 될 수 있으리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미국 국회를 방문했을 때 만찬에서 국회의원 부인들 옆에 앉으면 여러 가지 대화를 하기 마련인데 나의 경력을 물어본 후에 나오는 가장 흔한 질문은 의과대학의 신경외과 교수이면 수입도 좋고 사회적인 대우도 좋을텐데 왜 젊은 나이에 정치인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체로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즉, “내가 미국에서 최첨단 의학 지식과 기술을 공부하고 귀국했지만 우리나라의 재정적 빈곤 때문에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지 못하고 되돌려 보내야 할 때가 많았다. 의료가 이를 필요로 하는 모든 환자에게 제공되지 못하고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봉사로 그친다면 의료의 본질적인 의미는 반감된다. 나는 정치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의료와 환자 간의 경제적 장벽을 제거하도록 노력하고자 정치에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고, 또한 기존 정치인들보다 좀 더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다는 사족을 달았었다.
이런 포부와 희망으로 대학강단에서 현실정치에 참여했지만 선거에 돌입하고 보니 고난과 좌절의 연속을 겪게 되었다. 민주공화당의 공천부터 경합이 치열했다. 현역 의원이었던 김중한 의원, 그리고 전 자유당 의원으로 선거구의 거의 모든 집들을 호별 방문한 박종길 전 의원과의 삼파전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 공화댱 내에는 신진세력과 구정치인 세력 간의 파벌대립이 있었는데, 나는 주로 김종필 의장, 길재호 사무총장, 문창택 차장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초기에 나에게 보사부 차관 자리를 줄 터이니 공천을 포기하라는 제의가 구정치인 그룹 측으로부터 있었으나 이를 거절하고 지방조직 확대에 노력했다.
당 간부들 사이에는 당선만 될 수 있으면 나의 정치신념, 학력과 경력 등이 민주공화당의 이미지에 적합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는데, 처음 출마하는 관계로 기반이 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당 수뇌부의 강한 뜻이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
공화당은 6대 선거에서는 이상 4, 현실 6 정도로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지만 7대에 와서는 이상 쪽에 더 비중을 두어도 될 만큼 자신이 생기기도 했다.
공화당 결정하기 전에 공천결과에 절대 승복하겠다는 선서대회를 많은 당원들이 운집한 가운데 영덕에서 시행했는데, 공천신청자들이 서약서를 읽고 선서를 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의 요식행위로 끝나고 말았다. 공천탈락자들은 서약을 완전히 무시하고 선거에 비협조적이거나 또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것이다.
정치적 약속이라는 것은 어느나라에서나 신빙성이 없는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것이 예사로 되어 있어서 이것이 정치불신의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67년 6월 8일에 있었던 영덕, 청송지구의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참으로 치열했다. 야당의 김영수 씨, 무소속의 박종길 씨와 나와의 삼파전으로 전개되었다.
나는 정치신인이라는 점과 학력과 경력의 참신성, 그리고 여당의 프리미엄 등에서 유리했고, 김 후보는 지조 있는 야당성과 씨족의 지원, 그리고 박 후보는 지난 수년간 선거구를 고루 방문하면서 얻은 높은 지명도와 서민과 농민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체취 등이 유리한 점이라고 분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