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노조 파업 (20회)

병원 노조의 파업(罷業)

1960년 4.19직후 세브란스병원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노조는 병원측과의 임금인상 교섭이 결렬되자 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노조활동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교섭은 원만하지 못했으면, 노조는 쉽게 극단적인 행동에 돌입하게 되었다. 병원의 환자 진료는 거의 마비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고, 식사와 세탁은 교수부인들이 동원되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병원 측 태도가 워낙 완강해서 노조는 파업으로 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없게 되자 병원의 전기를 끌 것이라는 풍문이 돌기 시작했다. 수술 중의 환자는 물론 인공호흡으로 연명하고 있는 중환자들에게는 단전이 되면 치명적인 위협에 놓이게 되니 나로서는 크게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다발성신경염으로 호흡 기능이 마비되어 인공호흡을 받고 있는 7세 된 환자를 급히 다른 병원에 이송하기로 결심했다. 앰블런스에 호흡기를 연결한 채 환자를 싣고 수동으로 호흡을 시키면서 신촌에서 필동에 있는 제일병원까지 옮겼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다행히 단전까지는 가지 않고 파업은 수습되었다. 그 후 나는 의사들의 단체행동이나 병원 노조의 파업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 노사협상에 담보가 될 수는 없으며 이는 비윤리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노조활동에 대해 긴 역사가 있고 근로자의 권리가 보장된 선진국에서도 병원에서의 파업은 상당히 제한적인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의 병원 파업은 생각해볼만한 문제점이 있다고 믿고 있다.

1989년, 내가 보사부장관으로 일하던 민주화의 과도기에도 병원 파업이 일어났다. 서울대학 병원과 이화여자대학 병원에서 심각한 파업이 발생했는데, 나는 노사 어느 쪽을 두둔하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으나 입원환자들이 받고 있는 고통에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

서울대 병원은 문교부 소관이지만 의료행위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보사부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기자회견을 통해 파업으로 인해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위해가 발생할 때에는 모든 필요한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서울대학 병원과 이화대학 병원에 “노조 탄압하는 보사부장관 물러가라”는 플래카드가 여러 개 붙기 시작했다.

원장들에게 철거를 요청했으나 전혀 대책이 없기에 내가 사람을 보내어 제거할까도 했으나 어른답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병원 파업에 대한 나의 입장이 주민들에게 분명히 표시되는 것 같아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결국 플래카드는 4개월간 계속 걸려 져 있었다.

안국병원의 설립

1963년에 5.16쿠데타 후 처음으로 6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나도 정치를 통해 정치발전을 이룩하고 의료균점을 달성해서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상을 가지고 고향에서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찬성, 반대 양론이 있었고, 가족들은 대부분 반대 입장에 서 있었다.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뿌리 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브란스병원에서 나를 아끼고 도와주시던 선배, 교수님들도 나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부산에 있는 동래온천에 조동수 부총장, 민광식 외과과장, 이병현 학장님들과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분들은 신경외과를 창설해놓고 후임자도 없는데 그만두어서는 안 되고, 또 의학을 통해서 나라에 이바지하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아침저녁으로 나에게 설득하면서 출마를 만류하는 것이었다.

▲ 조동수 연세대 부총장 [출처 ; 연세대 의료원]

그 분들이 나를 아끼는 마음이 고마웠고, 내가 그 당시 부교수였으므로 이왕 대학에 들어왔으니 정교수가 되고 든든한 후임자를 정하고 난 다음에 떠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게 되어 6대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고 4년 더 기다리면서 준비하기로 마음을 정리하였다.

3년이 지난 후에 7대 선거에 출마를 결심하고 천병규 전 장관의 소개로 강성원 사무차장을 만났는데, 현직 교수는 정당법에 의해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고 해서 정들었던 연세대학에 사표를 내고 안국동에 안국병원(安國病院)을 개셜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김정근 박사와 함께 일했으며 나중에 내과 이상종 박사, 신경과의 명호진 박사 등이 참가하게 되었는데, 신경외과 전문병원으로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고 많은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첫 달의 수입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개원을 해서 얻은 수입과 대학교수의 수입과는 너무나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의 차이, 즉 2배나 3배정도의 차이라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10배, 20배가 된다면 제도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근래에 와서는 그 격차가 좁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제 간의 인정

신경외과 의사, 교수, 국회의원, 의협 회장 등의 책임을 맡아 일에 몰두했으며,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는 나의 성미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생이 흘러갔다 .시계바늘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마침내 1988년에 회갑을 맞이하게 되었다.

옛날 같으면 장수를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회갑의 뜻이 있었겠지만 인생 80시대에 61세 생일이란 그다지 큰 뜻이 없어보여서 축하모임은 하지 않기로 하고, 남들이 흔히 하는 외국여행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연세대 신경외과 교실에서 이규창, 정상섭 교수, 그리고 경북대의 이겸래 교수 등이 신라호텔에서 회갑만찬을 연다는 연락이 왔다. 사양했지만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초청장이 나갔다는 것이다.

신라호텔에서는 각계의 저명한 분들, 연세대에서 나를 잘 지도해주시던 조동수, 이병희, 이병현, 이우주 선생 등의 선배, 그리고 오랫동안 절친하게 지내고 있는 고극훈 박사, 서정삼 박사, 김광연 박사 등의 동료들, 의학계의 여러 지도자들, 이주걸, 심보성, 송진언 선생들을 위시한 신경외과의 선배, 동료들이 모여서 정말 분에 넘치는 축하연이 개최되었다.

연세대학 병원에서 신경외과학회, 의협 등에서 함께 고생한 분들에게 진신으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회갑기념 논문집을 증정 받았는데 재임 중에 발표되었던 36편의 연구논문들이 실려 있었다. 참으로 잊지 못할 따뜻한 정이 느껴졌으며, 나의 인생에서 연세대학교 신경외과에; 근무했던 시절이 가장 값진 것이었었다는 생각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세월은 흘러도 사제 간의 인정은 변치 않음을 통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