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고등학교는 교사들 분위기도 좋고 학교의 근무생활도 재미가 있었으나, 다음 해에도 고3을 맡을 가능성이 많아서 잘못하면 대학원을 영영 졸업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화여자고등학교 교사로 갈 생각을 하고 김원중 선생과 접촉을 했더니, 교장선생에게 말이 잘 전해져서 1968년 3월부터 그 학교 야간부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내가 원화여고에 부임하던 1968년 3월 1일 아들 철현(哲鉉)이가 태어났다. 첫 아들이라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석사와 박사를 계속하는 나의 순탄하지 않은 생활 때문에 이때부터 고생 길에 들어섰으며, 한 번도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못한 것을 지금도 나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철현이는 무럭무럭 자라 서울의 명지초등학교와 대신중학교, 남강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딴 후 김천 신애정신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를 마쳤다.
지금은 경기도 구리시에서 <유일정신과의원>을 개업하여 원장으로 병원 운영이 잘되고 있으며, 며느리 조수연과의 사이에 손자 ‘상원’과 손녀 ‘예원’을 두고 다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며느리는 이화여대 비서학과를 졸업하고 코롱 회장실에서 근무한 후 손자, 손녀가 출생하자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가정에만 충실하고 있다.
1971년 1월 2일에 은령(恩玲)이가 태어났다. 음력 정월 초이틀 모두가 바쁜 시기에 태어난 은령이는 서울 신림초등학교와 중학교, 미림여고, 이화여대 사범대학 영어과를 졸업하고, 광명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현재 명문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사위 임태주는 서울 시립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생활을 9년 정도 근무한 후 지금은 컴퓨터관계 회사의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둘 사이에 외손자 ‘수환’과 외손녀 ‘하린’이 있고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막내딸 혜정은 1972년 11월 27일 태어나서 신림초등학교와 중학교, 삼성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일산 동고등학교 지리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사위 최종열은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과를 졸업하고, 주식회사 삼성에서 5년 근무하고 미국 뉴욕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인디아나대학에서 전자정보관계의 박사학위 과정 2년차에 들어가 있다. 둘은 앞으로 몇 년간 미국생활을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아들과 딸들에게 아버지의 구실을 옳게 하지 못한 것을 항상 미안하게 여기고 있다. 남들이 하는 과외를 한 번도 시키지 못하고, 경제적인 도움도 크게 주지 못한 것을 안쓰럽게 여기고 있으나 모두 건강하게 자기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그저 대견하게 여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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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갑기념 지방화 시대 출판기념회에서 / 아내 이은정, 좌로부터 장남 장철현, 자부 조수현, 막내딸 장헤정, 맏딸 장은령, 사위 임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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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여고에서는 첫 해에 중2 담임을 하고 그 다음 해부터 2년 연속 고3 담임을 맡았다. 그 당시 원화여고 야간부 학생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내가 첫 담임을 했을 때 학생들은 경상북도 도청을 비롯한 각 관공서의 급사, 여군, 비구니, 회사원, 간호보조원, 도서관 직원 등이어서 내가 무슨 볼일이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 중 여승인 강문선 혜원(慧園)스님은 지금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향학열이 아주 강한 학생 중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다음해에 담임을 한 박종숙은 수녀가 되어 사회봉사에 전념하고 있으며, 전경애와 이경숙은 내가 일본에 갔을 때 풍성한 대접을 해주었다.
당시 원화여고에는 글을 쓰는 선생님들이 많았고, 특히 야간부에는 석사학위를 받거나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대구대학교 교수로 간 이강언, 경북대학교 교수로 간 이인석, 박진석, 최용호, 경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박찬석, 영남대학교 교수로 간 김정학, 부산 경성대학교로 간 박상렬, 부산대학교로 간 허만동 등 우수한 교사들이 많았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야간부 생활을 정리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시기에 대륜고등학교에서 와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나는 대륜고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대륜고등학교는 2년간 강사를 나갔기 때문에 국어 선생님을 비롯해서 친한 선생님들이 여럿 있었다. 부임인사를 하러가니 친구인 한점수가 내가 앉은 대각선 자리에 앉아 있어서 웬일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조금 있다가 신임교사를 소개하는데 그도 부임인사 하러 온 것이다. 우리 둘은 그 후 계속해서 붙어 다녔고, 한점수의 결혼식에 내가 사회를 보기도 했다. 나는 대륜고등학교에서는 고1과 중2의 국어와 문법을 가르쳤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요령소리와 함께 1971년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가 밝아왔다. 새해 아침 나는 큰 복을 받았다. 나의 평론 <자의식 문학과 난해한 한계성>이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된 것이다. 나는 동료교사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많이 받았다.
나는 앞으로의 문단활동과 서울로의 진출을 위해서 어렴풋이 서울로 옮길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동안 대구에서 쌓아둔 여러 가지 노하우도 가볍게 볼 수 없기 때문에 어정쩡한 마음으로 상경을 했다.
서울로 올라가서 광화문 근방에서 전화상을 하고 있는 옛 친구 석우일을 만났다. 석우일은 “신춘문예 당선 작품이 매우 좋다”고 말하면서 우리 2년 선배 중에 박노영이라는 분이 영남대학교 이선근 총장과 아주 친하다고 들었는데, 친구도 영남대학교 출신이라 혹시 대학교수가 될 지름길이 될 수 있을지 모르니 만나보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박 선배의 나이로 볼 때 이선근 총장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없다고 느꼈지만 인사하겠다고 말하니, 석우일이 박 선배와 전화통화한 얼마 후에 키가 자그마하고 귀족 타입의 단정한 신사 한분이 나타났다. 석우일이 내 소개를 하면서 <현대시학>에 실린 나의 신춘문예 당선작품을 박 선배에게 보여드렸다. 박 선배는 작품을 자세히 읽고 나서 “참 잘 썼는데요.” 하고 말하면서 “이선근 총장님을 만나보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내가 그러겠다고 말하자 우리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청파동 이선근 총장 댁으로 갔다. 총장 댁 문을 두드리자 며느리가 문을 열면서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총장 사모님에게 나를 인사시키면서 “제 후배이며, 영남대학교 출신인데 잘 좀 봐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했다.
총장께서 계시지 않아 어디 가셨느냐고 물으니 남산의 KBS에서 이갑성 씨와 ‘3.1절 대담’을 4시부터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