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육_2 (19회)

다시 학생교육에 관해서 기억나는 몇 가지 일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1960년 한일협정(韓日協定) 반대 데모가 일어났고, 일부 반체제 정치인들이 교내에 들어와서 선동까지 하고 있었다. 학생들 중 일부는 플래카드 걸어놓고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장에서 농성 중이던 학생들 중에는 가짜 단식을 하는 학생이 더러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소중한 일이지만 젊고 순수해야 할 학생 일부가 진실하고 정직한 행동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보고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신촌 부근에서 데모가 일어나자 나는 직접 현장에 나가보기도 했다. 그런데 의과대학생은 데모대의 맨 뒤에서 흰 가운을 입고 참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데모를 하려면 앞장서서 이끌어가던지, 아니면 공부에만 열중하는 용기가 있어야지 뒤에 따라다니는 것은 보기도 싫고, 더구나 환자 진료 때 입는 가운까지 입고 참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학생대표에게 야단을 쳤다.

의과대학생들은 타대학생보다 연령이 많아서 지도적인 입장에 설 수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행동해서는 이 다음에 나라와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루탄의 독한 냄새를 직접 경험한 다음 교수회의에 들어섰다. 그러나 교수회의에서도 무슨 묘책이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학생들의 주장이 옳다면 우리가 앞장서야 하고, 옳지 않다면 말려야 교육자로서 책임을 다 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학교에서 데모가 일어나서 질서가 파괴되고 희생자기 생기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 특히 정치인들의 책임도 있지만 교육자들도 응분의 책임이 있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데모가 희망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학교의 분위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에게 강요되고, 불응할 때는 제재까지 받게 될 때도 있다고 들었다. 이러한 행위는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학생들이 실제 행동에서는 이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 기간 동안에 마침 시험을 쳐야 하는데, 학생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을 때도 있었고 소수만 나타나서 시험을 취소시킨 일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신경외과 시험을 예전대로 치러야 한다는 결심을 학생대표에게 단단히 전달했고, 한 학생이라도 있으면 시험과 강의는 예정대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데모가 소강상태에 이르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담당한 시간에는 학생 전원이 시험에 응했다. 다음날 강의시간에 나는 묵묵히 강단에 올라서서 ‘살인자’라는 세 글자를 칠판에 썼다. 의학대학 학생이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졸업한 후 요행히 의사가 된다고 해도 합법적인 살인자가 되는 것이므로 이런 합법적 살인자를 양성하기 위해 내가 주야로 노력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는 말을 했더니 강의실이 숙연해졌다.

데모는 하더라도 대학의 목적인 면학은 해야 한다는 뜻인데, 요즘 같으면 추방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학생들과 가깝게 지냈고, 데모 때 부상한 학생을 가장 빨리 열심히 돌봐준다는 평도 있어서 내 말이 먹혀들어갔는지 모르겠다.

▲ 흰 가운을 입고 한일협정 반대 시위중인 서울대 의대생들 [출처 ; 서울대기록관]

신경외과는 의과대학 교육에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와 같은 중요과목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신경외과 때문에 학생이 유급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었다. 시험성적이 합격선 미달이면 반드시 재시험을 치르도록 하여 합격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또 신경외과 첫 강의 시간에는 3학년 학생들에게 반드시 의료전반에 관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했다. 의학의 한계, 의학과 종교와의 관계, 의사의 윤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무척 즐겁고 보람되게 느껴졌다. 고민하고 봉사하는 겸손한 의사가 되자고 호소했다.

교육자로서 병원생활을 하다보면 불쾌하게 느껴지거나 고쳐졌으면 하는 일들이 많다. 담배를 피우면서 복도를 걸어 다니는 의사, 슬리퍼 소리를 내면서 왔다갔다 하는 의사, 환자에게 반말하는 의사 등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훗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장으로서 모교 병원에 연구비를 기부하면서 원장에게 이러한 몇 가지를 시정해주도록 부탁했더니 다소나마 효과가 있는 것 가같아서 다행으로 여겨졌다.

1986년경 WHO가 일본 교토[京都]에서 주최한 의학교육에 관한 국제세미나에 의학협회 회장 자격으로 참석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회와 환자는 많이 변하고 있다. 점차 복잡해져가는 사회는 환자의 질병은 물론이고, 환자의 심리상태도 복잡하게 만든다. 의사는 환자의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야 하며 환자들은 이를 기대하고 요구한다. 일본에서는 스시집 요리사가 스시카운터에서 손님과 흥미롭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출근 전에 신문, 잡지를 통해 주식시장, 야구시합, 씨름경기 등의 많은 양의 지식과 이야깃거리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런데 의학교육은 어떠한가? 의대 졸업 후 수련의 과정에서는 의학에 관한 지식을 흡수하는 데는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의사가 되어 환자를 대하게 된다. 가정문제로 고민하는 사람, 주식투자에 실패한 사람,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는 환자들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는 일이 의과대학 교육에서 가능할 것인가를 나는 염려하고 있다.”

그랬더니 일본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요미우리(讀賣)신문 1면 하단의 미니 논설란에 이 말이 기사화되었다.

양심적이고 성숙하고 인간성을 지닌 만족할만한 의사를 양성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의과대학 교육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 나의 교육을 통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60년에 들어서니 외과의 분과로서 빠르게 성장한 신경외과 환자 수, 수술 수, 그리고 수입 면에서도 두각을 나타나게 되어 다른 독립 과목을 앞지르거나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신경외과가 교실로서 독립해야 발전이 빠를 것이라고 믿었던 나는 과독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외과과장인 민광식 교수의 결심을 얻기 위해서는 평소 잘 돌봐주신 조동수 부총장, 이병현 학장, 이우주 교수(훗날에 연세대 총장) 등의 후원이 대단히 효과를 거두었으며, 1961년 초에 숙원의 독립과로 출발하게 되어 조교수로서 과장에 임명되었다.

서울대학을 졸업했지만 도리어 연세대학에서 우대를 받아 곧 이어 부교수로 승진했으며, 1966년에는 37세의 나이로 정교수가 되었으니 참으로 빠른 승진이었다. 그리고 신경외과가 독립된 것도 우리나라가 가장 빠른 것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