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육은 수련의교육에 못지 않게 나에게는 중요한 과제였다. 1960년 초에도 옛날과 같이 교수가 강의를 하면 학생은 이를 받아 적는 식의 구식교육방법이 계속되었다. 대학교육은 학생은 책을 읽고, 교수는 강의를 통해 지식의 흡수를 자극하고 정리해나가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암기 위주의 교육보다는 문제해결의 방법을 논의하는 식의 교육방법이 채택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이 아직도 미국이나 선진국에 비해 차이가 나는 까닭은 학생들 스스로 공부하려는 습관이나 분위기가 부족하고, 강의 듣고 필기하는 것에 치중하는 옛 관습이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미국에서 가져온 시청각 슬라이드, 영화 등을 이용해서 새로운 스타일의 강의를 했는데, 학생들에게 잘 받아들여졌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교수가 자신의 과목에 한해서만 학생을 지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의사로서의 자세, 윤리, 환자와의 관계 등 시간만 있으면, 학생들과 대화를 했으며, 집으로 찾아오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저몀한 이상구 박사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당시 농촌에는 무의촌(無醫村)이 많아서 여름방학 동안에 농촌에 가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일이 흔했다. 농민들의 건강과 생활상태를 보고 느끼고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하는, 교육면에서도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나는 1960년부터 7년간에 결쳐 약 20명의 학생들과 함께 고향인 영덕에 가서 약 10일간에 걸친 비교적 큰 규모의 무료진료를 했다. 나의 고향인 영덕을 택한 것은 바닷가여서 여름휴가를 겸할 수 있었고,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교통, 숙식 등에 많은 지원을 얻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향의 해병사단, 대구의 50사단 등으로부터 차량지원도 받았고, 교육청에 부탁해서 국민학교 교실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어민들이나 어업조함에서는 나와의 친분 때문에 부식도 제공해주어서 학생들에게도 비교적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었다. 김광연 교수, 이영호 교수, 민대홍 교수, 학생으로는 한광선, 양문희, 박인남, 이규창, 정상섭, 안경성, 김성도, 김종근 등 훗날에 저명한 교수, 의사, 정치인들이 된 사람들이 참가했다.
우리들의 치료반은 흡사 야전병원과 같은 규모가 됐기 때문에 수술도 할 수 있어 환자들이 운집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농어촌 보건문제 해결에는 경제발전을 통한 국가적인 차원의 정책이 절실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여러 대합병원에도 신경외과가 설립됨에 따라 학회 창립의 필요성이 제고되기 시작해서 이주걸, 이헌제, 심보성, 김정근, 임광세 교수 등과 함께 1961년에 신경과학회(神經科學會)를 창설하게 되었으며, 그 후 우정현, 김선근, 김윤범, 이철우, 송진언, 김원묵 교수 등도 참여하게 되었다.
학회의 가장 큰 과제는 수련의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 결정과 전문의시험에 관한 것이었다. 수련기간의 결정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각 대학별 수련의 수를 조정하는 데는 이견이 많았다.
나는 그 당시의 우리나라의 의료수요로 보아 인구 10만 명에 신경외과 의사 1인이면 된다는 미국의 경우를 참고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의 교실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수련의 수가 많은 것이 효과적이고 다른 과와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과 소수 정예로 해서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맞서게 되었다.
이헌제 교수, 김정근 교수와 내가 후자의 견해를 고집했다. 장래를 내다볼 때 50병상 정도의 작은 병원에까지 신경외과 전문의를 배치하기보다는 전문과목의 특수성과 복잡성 등에 비추어 큰 병원에서 여려 명의 의사가 팀이 되어서 일하고, 환자를 이런 병원에 집중시키는 것이 치료 효과도 높고, 학문발전에도 유리하다는 주장한 것이다.
그 결과, 다른 전문과목에 비해 과잉배출에 대한 억제작용이 되어서 시골병원에서는 신경외과 전문의를 구하기 힘들다는 불평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199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신경외과 전문의 총수는 708명으로 세계 3위에 이르고 있는데, 국력이나 인구수, 의료수요 등을 감안할 때 기이한 현상으로 보인다. 교통사고 환자의 수가 자동차 수에 비해 세계 1위이기 때문에 많은 신경외과 전문의를 필요로 하는 지 모르나, 매년 70명 이상의 새로운 전문의가 탄생하고 있다는 것은 의료자원의 효율적인 이용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믿고 있다.
1968년 11월에 대한신경외과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주로 전문의 시험제도의 개혁에 노력했다. 전문의 시험이 교수들의 체험 때문에 형식화되기 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교수의 제자를 시험에서 떨어뜨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시험 응시자가 10명 내지 20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때에는 인정상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학문의 질과 임상의로서의 수준은 환자의 생명은 물론 신경외과에 대한 평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오늘 시험에 합격해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병원에 근무하는 병원 부근에서, 시험에 책임을 지고 있던 교수가 두부에 외상을 입었다고 가상할 때 안심하고 치료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시험에 임하자는 이야기를 한 일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시험제목별로 즉시 채점하여 종합집계함으로써 공정성을 갖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신경병리, 진단방사선 등의 과목에서는 신경외과 의사가 아닌 전문 교수들을 시험관으로 초빙했다. 신경외과는 출발은 늦었지만 계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각 병원에서 환자 수나 진료실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